top of page

서사를 가로지르는, 인간 형상에 대한 추상적 물음  

                                                              

/안소연 (미술비평가)

*

나는 그가 그린 그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짙은 푸른색 계열의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옆으로 똑바로 서서 기계에 나무 판을 반듯하게 올려 놓고 자르는 장면과 노란색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뒤로 돌아서 벽장 선반 가득 놓여 있는 도구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장면의 그림이었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장면을 화면에 담은 그 초상 회화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버릴 일상의 한 순간을 굉장한 힘으로 완전하게 멈춰 세운 것 같은 적막함과 인간 형상이 스스로에게 조차 분리되어 버린 것처럼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는 무심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인간 형상의 초상을 마치 공간 속에 정적으로[still] 놓여 있는 실물[life]처럼 내가 기억했던 이유는, 그 몸이 분명 무언가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공간 안에 격리되어 있는 것 같은 인물이 공간에 대응하는 “자기-존재”를 충실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의 윤곽과 표면의 현상뿐만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존재의 (잠재적) 상태” 같은 것 말이다.

 

**

윤미류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잠시 체류하고 있을 때 도시로부터 떨어진 시골의 한 목수 부부 작업장을 다녀와 <The Studio>(2020-2021) 연작을 그렸다. 수십 장의 사진으로 기록한 그때의 스튜디오 내부 모습과 그 안에서 일하며 움직이는 목수 부부의 모습을 그는 여러 차례 그림으로 옮겼다.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구체적인 인물들을 그리지만, 인물 자체만이 아니라 공간과 사물들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에도 집중한다”고 말한 그는, 목수 부부 두 사람의 고유한 인체 형상과 그 존재, 그러니까 그 스튜디오 환경 속에 놓인 어떤 “자기-존재”가 여러 사물을 매개로 환경과 관계 맺는 각각의 상태에 주목했던 모양이다. 그것은 궁극에는 인간의 형상을 사물과 공간 속에 추상적으로 공존하게 하는 물리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가능성은 인간 형상의 현존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이른바 “내적 존재”의 초상에 맞닿아 있음을 어느 정도 예상해 보게 한다.

      <The Studio>(2020-2021) 연작은 목수 부부의 움직임을 포착한 <The StudioⅠ~Ⅶ>(2020)과 그들의 얼굴에 주목한 몇 점의 <Untitled>(2020-2021)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인물 없이 공간 속에 놓인 사물의 한 장면을 덤덤하게 그린 정물 그림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시선의 간극, 즉 화면마다 대상을 낯설게 다루는 시선의 간극은 타인과 그들의 공간을 향한 한 사람의 내밀하면서도 급진적인 태도를 가늠케 하는데, 말하자면 낯선 대상에 대해 진실하게 보고자 하는 마음처럼 느껴진다. “진실하게 본다”는 것은, 대상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순응하며 그것이 나에게 촉발시키는 순수한 감각을 발휘하는 것일 테다.

      그의 그림은 언뜻 인물과 공간을 회화적으로 재현한 평범함을 보여준다. 사진 같은 속임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회화적 표현이 압도적인 물성과 제스처를 과시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얼굴과 머리카락이나 목덜미의 피부와 굽은 어깨 등을 각각 <Untitled>라는 제목으로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듯 그린 몇 점의 작은 그림들을 보면, 그 형태를 충실히 그려내고자 하는 물감의 색과 붓의 움직임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이는 그의 회화가 사진을 참조하여 대상을 충실하게 그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색과 제스처 너머에서 형태를 지탱해주는 (본질적인) 인간 형상의 추상성에 다가가려 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의 말대로 “그들[인물]이 가진 고유한 물성을 시각화”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

<Dripping Wet>(2021) 연작에서, 윤미류는 공간 혹은 환경 속에 있는 인물의 순간을 관찰하여 그림 그리기 위한 새로운 설정을 추가했다. 그는 일상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그들의 공간에서 포착하여 관찰해온 일련의 즉흥적인 조건에 “연출”을 개입시켰다. 그림의 모델로 일상에서 만난 낯선 대상을 사진에 담아 관찰하고 회화로 변환하는 대신, 그는 그가 알고 있던 인물을 대상으로 삼아 특정 공간과 장소에서 그의 연출에 맞춰 움직이는 신체의 장면들을 회화로 풀어냈다.

      <Dripping Wet>에서는, 한 사람이 바위와 나무로 둘러싸인 계곡 물에 들어가 자신의 몸과 사물[옷과 소품]과 환경[자연]이 관계 맺는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 <Dripping WetⅠ>과 <Dripping WetⅡ>와 <Dripping WetⅢ> 사이에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정황상 세 점의 회화 사이에는 “시간”이 매개되어 있다. 순차적인 행위의 연속성을 띄지 않기에 시간 또한 연속적이지 않지만, 윤미류는 그가 임의의 장소 안에 등장시킨 한 인물이 사물과 환경에 대응하며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일정 시간 동안 기록한 셈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들을 통해 내가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단면, 그리고 그들이 나를 통해 스스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담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작가노트] 이는 그가 이미 <The Studio> 연작에서 직관적으로 다루었던 인물의 “자기-존재”와 내밀하게 주고 받은 응시의 경험을 강조한다. 그의 말대로 “낯익은 대상이 환기하는 감각을 시각화”하려는 의도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작가와 대상[인물] 간의 관계에 있어서 일정한 시공간의 연극적 상황은 둘의 시선 교환으로 응축된다. 클리셰와 무관하지 않은 평범한 시공간에서 작가가/만 알고 있는 등장인물이 연출에 맞춰 특정 소품을 가지고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을, 윤미류는 마주한 위치에서 쉴 새 없이 사진에 담았다. 마치 예상하지 못한 우연한 순간을 포착한 스냅 사진의 효과를 살려, 이미 예정된 자신의 연출 보다는 연출된 행위를 뚫고 나오는 우연한 형태들을 포착하려 했을 테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의 반복으로, 윤미류는 다소 진부해 보일지도 모를 평범한 공간 속 인물의 초상에 그것의 시간적 서사가 아닌 조형적 서사 혹은 추상적 수행성에 집중하려 했던 것 같다. 이는 또한 디지털 사진 기술의 매개로 회화적 변환을 불러오면서 보다 복합적인 함의를 갖게 됐다.

      <Dripping Wet> 연작을 보면 같은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물건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을 각각 포착하고 있는데, 동시에 이 장면을 마주하고 있는 응시의 자리가 감지된다. 이 응시는 신체를 가진 현실의 시지각적 현상을 경험하며, 그것은 카메라 혹은 사진의 기계적/광학적 태도로 한껏 배가되어 현실 너머의 추상적 인식의 경험으로 향한다. 예컨대, 계곡물에 젖은 신체의 물성과 옷의 양감 및 중량감 등은 실재하는 삼차원의 환경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며 이는 작가에 의해 연출된 장면이나, 정작 작가는 이 예정된 시나리오를 비틀어 대기의 자연광과 카메라의 거리 설정에 따라 찰나적으로 조성되는 추상적인 감각을 실체화 하는 것이다. <Dripping Wet> 연작은 실재 환경과 편집된 사진 공간을 동시에 지각하게 하며, 이로써 회화에 대한 사진적인 감각을 통해 회화의 추상성을 도모한다.

      <Double Ripples>(2021)는 두 점의 닮은 그림이 쌍을 이루고 있다. 마치 휴대전화 사진 폴더를 열었을 때 연속적으로 찍은 사진 이미지들을 보는 것처럼, 사진적 찰나 또한 계속해서 수정되고 갱신된다. 윤미류의 <Double Ripples>는 디지털 사진의 (불)연속성을 매개해, 현실의 클리셰를 담은 인물-풍경화에서 그것을 추상적 형태로 인식할 당위를 보여준다. 그는 이미지 편집처럼 형상의 파동을 극대화 하는 연출을 통해, 익숙한 “장면”을 낯설게 열화시킬/변환시킬 회화적 개입을 탐구한다. 그것은 다소 근원적인 것에 가서 닿게 되는데, 응시의 구조가 서로 대상화 될 때 피차의 “자기-존재”에 대한 흔적이 회화라는 오래된 매체 안에서 복구될 수 있다는 믿음처럼 보인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