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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의 편재

                                                                                                  

/김현주 (독립 큐레이터)

윤미류 개인전 《Double Weave》 서문
(2022.12.09-12.29, 카다로그, 서울)

회화를 보며 반복을 보았다. 글을 쓰게 될지도 몰랐던 때다. 그때 도통 카메라 앵글에 잡아봐도 한 점의 회화가 아닌, 회화의 반복이 잡혔다.1) 리듬감. 묘했다. 이제 우리는 또 본다. 그 얼굴들. 그녀와 닮은 얼굴을. 달라진 건 “물을 직접 맞게 하지는 않고 창문에 물을 뿌려서 그 뒤에 비친 얼굴을 그린 그림”2)이다. 두 가지를 다시 크게 그린 그림도 본다. 맞는 것 같다. 여기 반복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짚어야겠다. 상황의 반복과 회화의 반복은 정말 같은가. 좀처럼 단 한 점만을 고수하지 않는, 반복에서 회화의 반복에 대해 고민한다. 그저 그리고 싶었단, 그러고 싶었단 얘기를 들었다. 더 깊게 묻지 않았다. 나도 그저 헤아린다. 이 회화에 사진을 옮겼거니, 또 순간에 대한 연출이려니, 또 동생이나 지인이 단서가 되는 설명을 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내 출발도 다르지 않았다. 동생은 작년부터 등장했다. 동생이어야 했을까? 꼭 그이라서 답은 아닌 것 같다. 더불어 연출이 그림 설명에 앞서는 것도 그저 그렇다. 연출이 회화에 대한 쟁점이 될까. 사진도 매한가지다. 회화에 사진이 닿지만 회화는 사진이 아니다. 우리는 그럼 왜 이 그림 앞에 있는가.

 

〈Untitled〉과 〈Shapeless Like Water〉, 여기서 파생된 〈How Comfortable Are You With Silence?〉, 〈Cupping Water〉, 〈Water Fountain〉 등 물 동심원 안의 작품들이 있다. 쉽게 풀면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없는 액체의 특징에서 시간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짚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자장을 덮어씌울 수도 있다. 유체에 대해, 하단에 날짜가 있어야 하는 사진들과도 같다는 설명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바우만이 ‘유동성’이나 ‘액체성’의 ‘액화’ 과정을 견고한 것들을 녹인 근대의 속성으로 전이해가고 있으므로 이쯤에서 멈춰 이별해야 한다. 회화의 문제로 돌아와 유화로 물에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의 속성 자체가 문제라면 유화 아닌 방식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동생을 그리면서 물을 그리는 게, 물과 결합한 대상을 그리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질감으로 드러나는 대상과 그걸 유화로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 또 물과 관련하여 떠올릴 수 있는 여러 형용사를 인물과 연관 짓는 것”4)이 흥미로웠다는 구절을 쥐고 고민한다. 결국 유화, 수채화, 아크릴화라는 회화 하위 범주로 갈 것 없이, 회화의 과제를 스스로 부여하고 풀이하는 화가 한 명을 만난 것 같다. 반복은 풀이 과정의 갈래일까. 그렇다고 이 낱낱을 과정 중의 습작으로 치부하고 싶진 않다.

 

최종 선택에서 사라진 그림 하나가 있는데 그건 〈Crop Rotation〉이다. 키에르케고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펼쳐 읽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중에서도 땅을 바꾼다는 의미인 「윤작(輪作)」을 좋아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책을 좋아하는데 그 책을 그린다는 건 또 무엇일까. 키에르케고어는 「윤작」에서 권태가 만악의 근원임을, 그럼에도 권태를 씻을 길 없다는 사설을 늘어놓는다. 대신 경작법을 다양화하길 종용한다. 현실을 보는 우리의 눈은 항상 변해야만 하며, 우리는 항상 우연적인 것에 대하여 눈 뜨고 있어야 한다는 일갈은 어떤 면에서 권태롭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어떤 이론보다, 하찮은 것이 주는 즐거움이 풍부한 자료가 됨을, ‘천재가 그의 편재(偏在) 속에서 발견하는 충만’5)에 빗댄 마지막 문장에서 멈칫했다. 편재, 그 치우침이 있고 그 편향으로부터 되돌아오고 되 비추는 태도라면 〈Face in Rectangle〉의 거울 마주 세움의 반복과, 붉고 푸름이 단적으로 치우친 〈I Don’t Know If It’s Just Me/Right Eye〉와 〈Think of Blue For Some Reason〉의 대비를 이해할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색은 생뚱맞아도 그게 묘하게 원래 그 색이었던 것처럼 느껴져요”6)라고 말하는 이는 망각의 기술을 수련한, 혹은 수련하고 있는 중에 있다. 회상과 망각이 짝패라면 망각의 기술은 회상의 기술도 수반한다.

 

“화가는 캔버스가 아래쪽에서, 저 모든 물감 아래서 어떻게 느낄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 천인 린넨으로 된 캔버스는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다.”7) 다만 이 끝없을 노력이 사랑의 노역이라고 바우만이 말하고, 캔버스 대신 인간이 입을 열어 말한다. 그녀가 대상의 일부를 이미지로 번역하고 추상적인 감각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자 할 때8) 그녀는 번역과 은유라는 현재 자신의 과제를 회화의 반복을 통해 드러내기에, 내가 대신 말하기를 도맡았다. 「윤작」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는데, 한편 「윤작」으로부터 편재가 발생했음에 대해서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내 앞에 존재하는 이가 체득했다고 짐작하는 건 회화의 권태에 대한 자기작동법임을 믿는다.

1) 2022년 윤미류 개인전 《B형 비염 귀염》(상업화랑, 8.23.-9.18.) 전시를 보았고 이후 2022 아트플러그 연수 기획전 《Match Box》(APY 아트플러그 연수, 8.23.-9.18.)에서 몇 점의 작품을 더 볼 수 있었다.

2) 윤미류가 보내온 「사적인 설명들」에서 발췌했다.

3) 바우만은 액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액체는 자신이 어쩌다 차지하게 된 공간보다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 액체는 공간을 차지하긴 하되 오직 ‘한순간’ 채운 것일 뿐이다…액체는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고체를 설명할 때, 우리는 시간을 송두리째 무시할 수도 있지만, 유체를 설명할 때 시간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이는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유체에 대한 설명은 하단에 날짜가 있어야 하는 사진들과도 같다.” 지그문트 바우만, 『액체근대』, 이일수 옮김, 강, 2010, p. 8.

4) 「사적인 설명들」에서 발췌.

5) 쇠얀 키에르케고어, 『이것이냐 저것이냐』 제1부(하), 임춘갑 옮김, 다산글방, 2015, e-book에서 인용했다.

6) 「사적인 설명들」에서 발췌.

7)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권태우,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3, p. 65.

8) 윤미류의 작가노트(2021-Dripping Wet)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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