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와 제3의 의미  

                                                              

/문혜진 (미술비평가)

채비, 다짐, 기대, 신경질, 멀미, 도망

서늘한, 선명한, 그늘진, 반사되는, 무거운

태연한, 굳은, 당황한, 깜깜한

더듬다, 버티다, 다물다, 덤비다1)

 

대상의 상태나 속성, 반영 조건과 관련되는 이 키워드들은 윤미류가 시각적 이미지를 선택하거나 환기하게 된 단서들이다. 구상 회화인 윤미류의 그림들은 구체적인 피사체와 상황이 있지만, 실상 그림이 가리키는 것은 화면이 묘사하는 대상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가 대상을 마주쳤을 때 느낀 감각이다. 각기 다른 질감을 지닌 소재의 표면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이 닿으면서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특정한 인상과 분위기가 윤미류가 포착하고자 하는 회화적 목표다.

이러한 속성은 초창기부터 드러난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화방에서 일하던 무렵 알고 지내던 목수 부부를 그린 <The Studio> 연작은 얼핏 보기에 기억에 관련된 작업처럼 보인다. 사진에 기반한 것이 분명한 제작 방식이나 피사체가 낯선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피사체와 관련한 작가의 기억이 이 그림의 동기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문제는 작가의 의도가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방점이 있다는 점이다. “깎고, 절단하고, 다듬고, 나르는 행위, 먼지 가득한 공기와 산발적인 폭우로 인한 습기, 그것과 섞인 담배 연기, 잠깐씩 들어오는 햇빛과 실내의 노란 조명 등에 대해서. 눈앞의 익숙하지만, 또 낯선 형태들에는 무언가 아름답고 흥미로운 면이 있다고 느꼈고 그것을 평면에서 다시 찾고자 했다.”2) 이 설명은 일차적으로 특정 시공간에서 대상이 자아내는 찰나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피사체와 연관한 정서적 기억이 아니라 해당 상황이 피사체와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지는 감각적 질감에 근거한다는 점이 윤미류 회화의 차별성이다. 그림은 작업을 하고 있는 목수를 보여주지만 인물은 공간 속에 스며들어 환경의 일부를 이루지 화면의 주인공이 아니다. 톱밥 가루가 뽀얗게 앉은 장비와 인물은 스튜디오의 구성원으로 동등한 지위를 지닌다. 더욱이 사진이 아니라 회화로 이 장면을 재구성할 때 화가로서 작가의 관심사는 색면의 구성에 있다. 목수의 노란색 티셔츠가 화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검정과 빨강이 엇갈려 짜인 모자의 색면과 다트판의 색면이 조응하는 리듬, 나무판의 결과 그림자를 포착하는 속도감 있는 시원한 붓질의 쾌감이 <The Studio> 연작에서 작가가 중점을 둔 측면이다. 그런 점에서 윤미류의 그림은 인상주의를 연상케 한다. 그림이 빛에 의해 다르게 변화하는 색채 인지 실험이지 역사적 건물로서의 성당의 종교적·미학적 의미와 무관하므로, 피사체가 루앙 대성당이든 짚단 더미든 모네에게는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윤미류 역시 초점이 표면에 드러나는 감각을 시각화하는데 있으므로 피사체는 매개체일뿐 실상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찰나적 감각을 시각적으로 포착한다는 목적은 미세한 차이를 통해 가장 잘 감지된다. 약간의 시차에 따라 살짝 바뀐 고개의 각도나 광량, 표면 상태 변화를 통해 대상이 아닌 표면의 인상이 선명해진다. 윤미류의 작업에서 마치 영화의 스틸 이미지처럼 이어지는 장면의 일부를 동결한 복수의 연작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머리를 자르는 모습을 연속동작사진처럼 포착한 5점 연작 <Buzzcut>(2021), 다른 앵글에서 본 인물의 두상을 그린 2점 연작 <Blue-green Lake>(2020)은 시퀀스(sequence) 작업의 첫 사례에 해당한다. 시퀀스 작업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작년에 진행한 신작들에서 한층 강화된다. <Studio>(2021)는 동양 화가인 작가의 할아버지가 작업을 펼치는 장면을 그린 2점짜리 연작이다. 작업의 핵심은 말아 보관해 발생한 그림의 주름과 이를 반대로 말아서 펴는 과정에서 달라지는 종이의 구김 차이일 것이다. 특히 작가의 동생이 계곡에서 옷을 물에 담그는 장면을 소재로 작업한 신작들은 예외 없이 연작의 포맷을 지닌다. <Double Ripples>(2021), <Little Drops>(2021), <Dripping Wet>(2021), <It forms, flows, and falls>(2021), <The Play of Light on the Surface>(2021), <Green Ray>, <Black Water>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이들은 스냅사진을 활용하던 전작과는 달리 의도적인 연출이 개입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소품이나 의상, 동작 등을 인위적으로 설정한 연출은 머리카락의 위치나 표정, 시점, 물에 젖은 정도에 따라 완연히 달라지는 순간적인 느낌을 포착하려면 두루뭉술한 우연적 스냅사진이 아니라 세부 변화에 초점을 맞춘 의도적 촬영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도입된 것이다. 신작들은 과거보다 시차에 따른 미세한 표면 질감의 변화를 한층 강조한다. 물이라는 소재는 이 목적에 특별히 부합한다. 물에 젖은 천은 피부에 밀착해 빛의 정도에 따라 주름과 투명도의 변이를 드러내며, 젖은 머리카락이 빛을 받으며 시시각각 색이 변화하거나 그림자가 드리우는 각도에 따라 젖은 피부의 광택이 달라지는 양상은 왜 작가가 계곡을 선택했는지를 납득하게 만든다. 그림자로 강한 콘트라스트가 드리워져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고 같은 옷을 몸에 붙였다 펼칠 때 색깔과 물성이 달라지는 <Green Ray>, 젖은 머리카락이 만드는 선을 검은 물줄기의 흐름으로 간주한 <Black Water>는 목수의 노란 윗옷을 노란 색면 구성 실험으로 접근한 <The Studio> 연작의 심화 버전이다.

 

롤랑 바르트는 영화의 스틸 이미지를 일반적인 사진과 구분했다. 사진이 한 장의 이미지로 완결되어 있다면, 스틸 이미지는 흐름 속에서 취해진 것이라 끊임없이 다른 장면을 향하여 떠밀리고 잡아 당겨지기 때문이다.3) 다시 말해, 영화의 스틸 이미지는 연속성을 내포한 정지 사진이라 복수성을 전제한 시퀀스로서 의미가 있다. 나아가 그는 영화적인 것(le filmique)은 연속체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스틸 이미지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줄거리와 배우 아래에 잠재된 재현될 수 없는 무언가는 제3의 의미의 층위에서만 발현될 수 있고, 그것이 멈춰서 바라볼 수 있는 스틸 이미지에서 비로소 출현한다고 본 것이다.4) 영화가 아닌 회화로 시퀀스를 구현하는 윤미류의 작업 역시 맥락은 다르지만 바르트적 의미로 회화의 제3의 의미를 실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소재의 복수의 그림을 비교하며 피사체가 누구인지, 그려진 장소가 어디인지 같은 내용은 사라지고 미세한 차이가 떠오른다. 소재의 물성, 빛의 투사각, 반사면의 속성에 따라 변화하는 표면의 인상은 보는 자로서 화가가 내용 이전에 일차적으로 반응하는 시각적 속성이다. 그런 점에서 윤미류의 태도는 지극히 현상학적이다. 스쳐지나가는 장면의 감각을 붙잡아, 건져 올리고, 재조합해 공유하려는 의도는 경험적이고 육체적인 시각성이 아니던가. 대상 이전의 시각적 지각이라는 ‘회화적인 것’은 완결된 하나의 캔버스가 아니라 복수의 시퀀스를 통해 비로소 감지된다. 윤미류의 회화가 제3의 의미와 맞닿는 까닭은 그래서다.

1) 윤미류 작가노트, 2021.

2) 윤미류 작가노트, 2021.

3) 롤랑 바르트(조광희, 한정식 역), 『카메라 루시다』(열화당, 1998), 100쪽.

4) 롤랑 바르트(김인식 편역), 「제3의 의미」, 『이미지와 글쓰기』(세계사, 1993), 175쪽.

Painting and the Third Meaning  

                                                              

/Hye Jin MUN (Art critic)

Getting ready, determination, expectations, jitter, motion sickness, escape

Chilly, clear, shadowed, reflective, heavy

Nonchalant, rigid, perplexed, pitch-black

Groping, withstanding, shutting, attacking 1)

 

These keywords all relate to the state, features, and reflective conditions of the object and act as the clues for Miryu Yoon to select or recall visual images. Being figurative paintings, there are concrete subjects and situations in Yoon’s images, however, what the paintings indicate in fact is not the objects or stories depicted on the canvas but the sensations that the artist had when encountering the objects. The impression and ambiance that momentarily emerge when the light that changes from moment to moment touches the surface of different textures are what Yoon attempts to capture.

 

These features are found in Yoon’s early works. The Studio series, which Yoon painted of a carpenter couple she became acquainted with around the time she worked at an art supply store in Dublin, Ireland, may seem like a work related to memories. The production method that is obviously based on photography, or the fact that the artists were not unfamiliar with the subjects, make one assume that what motivated the paintings could be the artist's memories about them. What is at stake is that the artist wants to put an emphasis on the form, not the content. “It is about the act of carving, cutting, polishing, carrying; it is about dusty atmosphere and moisture caused by sporadic downpour, that are mixed with cigarette smoke; it is about sunlight that gets in intermittently, and yellow indoor lighting. I felt that there are some beautiful and intriguing aspects in the forms presented in front of me that are familiar yet unfamiliar, and I wanted to find them yet again on a flat surface,”2) says Yoon. This account is primarily related to the ephemeral ambiance created by subjects in a specific spacetime. However, what is distinctive about Yoon’s painting is that the ambiance is not based on the emotional memories associated with the subjects, but the sensory texture created through the interaction between the situation and the subjects. The painting shows the carpenter at work. However, the human subject is blended into the space and forms a part of the environment, and is not the protagonist of the scene. Tools topped with white sawdust and the human subject hold equal status as members of the studio. Furthermore, when recomposing this scene not as photography but as painting, the artist’s interest as a painter lies in the composition of the color field. The artist’s main foci in The Studio series are as follows: the portion that the carpenter’s yellow t-shirt takes up in the whole canvas, the rhythm of the correspondence between the color field of the hat crisscrossed with black and red and that of dartboard, and the pleasure presented by the speedy and unreserved brushstrokes that capture the texture of the wood panels and shadow. In this regard, Yoon’s paintings evoke Impressionism. Because Impressionism was a cognitive experiment about how colors change depending on the light, irrelevant to the religious and aesthetic meanings of the cathedral as a historic architecture, it made no difference to Monet whether his subject is Rouen Cathedral or wheatstacks. For Yoon, too, subjects are sheer media, and their reality itself is not of significance since Yoon’s focus is also on visualizing the sensations that emerge on the surface.

 

The goal of visually capturing ephemeral sensations is best detected through subtle differences. Through the slightly tilted head, or changes in the amount of light or conditions of the surface depending on the slight time differences between images, what gets clear is not the impression of the subjects but the impression of the surface. This is why Miryu Yoon’s work includes many series consisting of plural paintings as if they froze a part of a sequence as in still images of a film. Works like Buzzcut (2021), a five-painting series that captures the scene of cutting hair as action sequence photography, and Blue-green Lake (2020), a two-painting series depicting a head of the subject seen from different angles, are the first iterations of Yoon’s “sequence” work. The “sequence” work becomes even more prominent in Yoon’s works produced in 2021, having Koreans as subjects. Studio (2021) is a two-painting series capturing Yoon’s grandfather—himself an artist of oriental paintings—unrolling his works. The core of these paintings must be the difference in the paper’s creases: the ones that are created in the process of rolling for storing, and the others created in the reverse process of unrolling. Especially, the new works based on the subject matter of the artist’s sister soaking clothes in the water at a valley take on the format of the series without exception. They include works such as Double Ripples (2021), Little Drops (2021), Dripping Wet (2021), It Forms, Flows, and Falls (2021), The Play of Light on the Surface (2021), and Green Ray (2021), Black Water (2021). They are distinctive in a sense that they involve intentional directing, compared to the previous works that made use of snapshots. The contrived staging of props, costumes, and postures is adopted because the instantaneous sensations completely change depending on the position of the hair, facial expression of the subject, point of view, and the degree of being wet. These elements are effectively captured by intentional shooting focused on the changes in detail, rather than blurry and spontaneous snapshots. Yoon’s new works have even more emphasis on the subtle changes in the texture at different moments in time, compared to the past works. The subject matter of water serves especially well for this purpose. Cloth soaked in water that is attached to the skin revealing the transformation of creases and opacity depending on the degree of light they get; the way wet hair changes color every moment as it gets light; and the way the gloss of the wet skin changes depending on the angle of shadow—these elements validate the artist’s decision to paint the valley. Green Ray shows how the facial expression changes completely due to high contrast from shadow, and how the color and the materiality of the same clothes change as they are attached to and detached from the body; Black Water considers the lines created by wet hair as flow of black stream of water—these works are advanced version of The Studio series that approached the carpenter’s yellow top as a composition experiment of yellow color field.

 

Roland Barthes drew a distinction between film still images and generic photography. Whereas photography is completed as itself as an image, film ’s still images, being taken from the flow, are incessantly being pushed and pulled towards other scenes.3) In other words, being still photography incorporates continuity, film’s still images hold significance as a sequence that is premised on plurality. To expand further, Barthes even argues that “the filmic (le filmique)” can be grasped not in film as a continuum but only in still images, ironically. That is, Barthes considers that something that cannot be represented that is latent in the plot and the actors can only emerge on the level of the third meaning, and that it only emerges in still images, that can be seen while being still.4) Although in a different context, Yoon’s work realizes sequences not through film but paintings, and can be regarded as experimenting with the third meaning of the painting, in the Barthean sense. In comparison to multiple paintings of the same subject matter, what disappears is the content—who the subject of the image is, where the depicted place is; what emerges is subtle differences between them. Things such as materiality of the subject, projection angle of the light, changing impressions of the surface depending on the quality of the reflective surface, are visual features to which the painter react in the first place, before the content. In that sense, Yoon’s attitude is quite phenomenological. Isn’t the intention to capture, pick up, and recompose to share an empirical and corporeal visuality? “The painterly,” a visual perception that comes prior to the subject, is finally detected through plural sequences, not through a complete single canvas—that is why Miryu Yoon’s paintings are aligned with the third meaning.

 

1) Miryu Yoon’s notes, 2021.

2) Miryu Yoon’s notes, 2020.

3) Roland Barthes (trans. Kwanghee Cho, Jungsik Han), Camera Lucida (Paju: Youlhwadang Publishers, 1998), 100.

4) Roland Barthes, “The Third Meaning,” in Image and Writing, ed., and trans. Insik Kim (Seoul: Segyesa, 1993), 175.